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산업 혁명 (문단 편집) ==== [[노동자]]들의 고통 ==== || [[파일:DSrbZEQWsAAT-O_.jpg|width=100%]] || [[파일:DSrbZD2X0AAs16I.jpg|width=100%]] || ||<-2> 산업혁명 당시 런던의 노동자들을 위한 숙소. 왼쪽의 그나마 편한 관 모양의 숙소[* [[구세군]]이 운영한 곳인데, 가격과 모양 그대로 '4 penny coffin(4페니짜리 관짝)'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는 4페니였고, 그조차 낼 수 없는 이들은 더욱 열악한 오른쪽의 1페니짜리 숙소에서 의자에 앉아 로프에 기댄 채 자야 했다. || 이 초기 산업 혁명은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가장 문제시되었던 것은 가혹한 노동 환경이다. 위에서 서술되었듯 기계가 노동력을 대체하는 데 비해, 당시 영아 사망률이 조금씩 줄어감에 따라 인구는 매년 급속히 증가하기 시작했고 거기에 더해 인구가 늘고 도시화가 가속화되면서 노동 공급은 급속하게 증가하였다. 이로써 [[부르주아]]들이 일방적으로 노동자들을 손쉽게 착취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서 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환경에 시달려야 했다. 당시에는 노동자들의 참정권이 없었고 자유주의적 정책 기조로 정부와 의회는 부르주아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에만 바빠 관련 법 제정이 미비했기에, 제대로 된 근로시간도 정해지지 않아 많은 노동자들이 과로에 시달렸다. 특히 노약자 계층에서의 노동이 크게 늘어났는데, 어린이들도 만 7세부터 면직 산업에 동원되어 학대를 받으며 일하다 요절하는 경우도 많았다. 일각에서는 가혹한 노동조건은 전근대 농촌 사회로부터 이어졌고, 그 근거로는 전통 사회에서는 막 걸음걸이를 뗄 만한 어린 나이부터 일에 동원되는 것이 다반사였고, 16시간에 달하는 가혹한 노동 시간도, 전근대 사회에서 해 뜰 때 일어나서 해 질 때까지 일하는게 당연했던 점이 이어졌다는 것을 든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봤을때 산업혁명기의 노동환경은 그 이전 농경시대 노동환경에 비교해봐도, 엄청나게 퇴보했다고 보는게 맞다. 퇴보의 정도가 "전근대 농촌사회로부터 이어졌다." 라는 한 문장으로 퉁 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물론 그 이전 농경시대에도 아동노동이 있었고, 노동 시간에 대한 것도 명확히 정해진 바 없이 해 뜨면 일하고 해 지면 쉬는 수준이었다는건 맞다. 그러나 이걸 빌미로 마치 그 이전 시대에도 산업혁명기의 열악한 수준의 노동환경이 당연했고 그게 산업혁명기까지 이어졌다는 뉘앙스로 읽히게끔 서술하는건 그냥 교묘한 왜곡성 서술이다. 그 이전 농경시대에는 각 지역사회마다 관습법이 존재해서 산업혁명 초기 수준으로 아동을 미친듯이 굴리고, 성인이 하루 16시간씩 일하는 미친 짓이 당연하게 성행하진 않았다. 아동은커녕 청소년조차도 통계적으로 어른에 비해 더 적은 노동을 했을 정도였다. 긴 말 할 것 없이 그 이전시대와 비교해보았을 때 노동 시간이 30% 증가해서 연평균 노동시간이 1,100시간 늘어난 시대다. 자세한건 "노동조건 개선" 문단에서 후술. 임금은 후대에 보면야 최소한의 생활 수준만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은 낮은 수준으로 보이지만, 바로 이전의 농촌 사회와 비교했을 때는 매우 높은 수준이었다. 초기 직물 공장은 여성 성인 노동자가 대다수였는데, 남성 직물 노동자들은 공장에서 일하길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초기 공장들은 남성 수준의 임금을 제시해서 여성 노동자들을 끌어들였는데, 이 시대 런던의 남성 노동자들의 임금은 북프랑스에 비해서 2배, 밀라노와 비교해서 4배에 달했다. 산업화가 시작되지 못한 유럽 타 지역에 비해서 거의 4배에 달하는 임금을 받은 것. 식량 유통을 기준으로 가늠해도 비슷한 결과가 나오는데, 이 시대 영국은 타 지역에서 일방적으로 식량을 빨아들였고 런던은 그 영국에서도 식량을 빨아들이는 위치였기 때문이다. 즉, 당시 기준으론 그 공장 노동자들의 구매력과 임금이 영국 및 유럽의 타 지역 사람들보다는 확실하게 높았다는 것이다. 당대 런던 노동자들의 임금이 먹고 살 여력이 없을 정도로 낮은 수준이었다면 런던의 인구성장이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급여가 그렇다는 것이지, 사회변화상을 살펴보면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또한 산업혁명 시기에는 기존의 관습법이 사라진 시기여서 더욱 큰 문제가 일어났다. 기존에는 관습법으로 인해 노동자들에게 최소한의 하한선이 존재했지만, 관습법이 무시되면서 평균적인 노동자들의 삶은 관습법이 정해주었던 하한선보다 더욱 낮은 삶을 살게 된 것이다. 또한 어린이 노동 같은 경우에도, 농촌과 같은 시간을 일했다고는 하지만 농촌의 경우 모든 사람이 오랜시간동안 면식이 있던 사이다 보니 위아래간 서로 간의 편의를 봐주는등의 여유가 있었지만, 공장에서는 사방에서 온 사람들이 모인 만큼 이런 편의가 거의 없었고, 공장의 노동 강도는 당시 농촌의 노동 강도보다 훨씬 심했다. 1810년대에 [[러다이트 운동]]으로 열악한 노동조건에 대한 항의가 전국적으로 번져나가기 시작했고, 당시 영국 정부에서 이를 탄압했지만 더이상 늘어나는 노동자들의 요구를 아예 안 받아들일 수는 없었기 때문에 이를 무마하는 차원에서 규제하는 법률은 1833년에 제정되었으나,[* 그나마도 최저 연령이 9세로 늘어나고 노동시간을 제한한 정도지만 점점 나아지기는 했다.][* 영국의 뒤를 이어 유럽 각국에서 아동노동을 규제하는 법률들이 성립되었는데 개중에서 독일의 프로이센은 그 입안 과정이 특이했다. 프로이센의 아동노동금지법은 프로이센 육군 참모총장이 국왕에게 건의해서 제정된 것이다. 참모총장 왈, "폐하, 제발 아동노동을 금지해 주십시오. 애들이 어렸을 때부터 하도 부려먹히다 보니 자라지를 못해 징집을 해도 애들 몸에 맞는 군복도 없고 총도 못 가눠서 픽픽 쓰러집니다!"] 이후 30~40년에 걸쳐 지속되었다.[* 이와 같은 현상은 과거 우리나라에서도 있었고 180년이 지난 현재에조차 개발도상국에서 흔하게 벌어지고 있다.] [[파일:external/www.socialstudieshelp.com/child_in_mines.gif]] 미성년 노동자들은 탄광이나 공장에서 하루에 1시간도 쉬지 못하고, 매일 10시간씩 건강을 해쳐 가면서 일을 해야 했다. 일을 하다 다치거나 쓰러지면 과정은 상관없이 무조건 본인 과실 취급이었고 급여 또한 제대로 받지 못하는 사실상 노예노동이었다. 심하면 탄광에서 주 6일 동안 하루 12시간을 일하는 경우도 있었다. 다른 산업 혁명을 겪은 유럽 국가들도 마찬가지여서 19세기 후반 유럽 노동자들이 저 힘든 중노동을 주당 평균 50~60시간 했어야 했다. 1760~1830년대 1인당 GDP의 성장률은 상당히 느렸기에[* 1830년 이전에는 1인당 성장률은 고작 0.3%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반면 1830년 이후 1차대전까지는 1%씩 성장했고, 2차대전 후에는 2%씩 성장했다.] 실제 경제성장은 상당히 미진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또, 경제학에 따르면 임금은 대체로 노동의 한계생산만큼[* 물론 자본가의 지대추구나 효율임금, 노동시장구조 등에 따른 여러 변수가 있다.] 증가하기 마련인데, 이 노동의 한계생산은 노동에 들어가는 자본이 많을수록 올라간다. 1760~1830년대 영국의 자본투자는 나폴레옹 전쟁이나 주식투자 규제 등으로 상당히 미진한 상태였고 따라서 근로자들의 임금이 별로 높지는 않았다고 한다. 즉 임금이 적기 때문에 저런 중노동을 통해서만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돈을 벌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유럽권의 산업 혁명뿐 아니라 사실 각국의 산업화/근대화에선 독재정권, 권위주의 체제하에서 이런 노동자의 고통이 거의 예외 없이 동반되었다. 소련의 스탈린 개발독재는 워낙 유명하며, 아시아에서도 일본의 메이지 유신, 한국의 제3공화국, 중국의 덩샤오핑 집권기 등으로 근대화가 진행될 때는 국민들은 항상 힘들었다. 유럽의 근대화에서도 사람들이 고통받고 죽어나갔고, 일본은 근대화와 경제발전 시기에 환경오염과 산업재해가 빈번히 일어나서 미나마타병, 이타이이타이병 같은 질병이 만연했고 한국의 경우에도 한강과 낙동강 등 주요 하천이 오염되면서 그냥 먹을 수 없는 수준이 되었고 정부와 기업이 수출 제일주의라는 구호 아래에서 노동 착취를 방조하면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연간 3,000시간 이상의 중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이는 현재 중국, 인도, 동남아에서도 반복되고 있는 문제점으로 [[스모그]] 현상 등 환경 문제도 이런 성장제일주의의 결과물이라는 지적이 많다. [[올리버 트위스트]]나 [[플랜더스의 개]]가 산업혁명 당시의 유럽의 사회상을 반영한 소설이었고, [[카를 마르크스]]가 왜 떴는지 알 만한 시대였다는 것이다. 동시대 인물인 [[허버트 조지 웰즈]]가 SF 소설인 [[타임머신(소설)]]에서 '엘로이'와 '몰록'의 설정을 각각 지배층과 하층 노동 계급의 후손으로 설정한 것도 여기에서 기인한다. 그 처참한 격차 수준을 볼 때, 이 상태가 계속 지속된다면 언젠가는 같은 인류라고 보기도 힘들 지경이 될 수 있다는 우려는 전혀 무리가 아니었을 정도였다. 다행히도 19세기 중반에 들자 [[사회주의]] 이념이 형성되어 일부 지식인과 정치인, 그리고 소수의 [[공상적 사회주의]] 성향의 자본가들[* 사실 노동자 권리 보장에 적극적이던 자본가 중에는 공상적 사회주의자 말고 [[보수주의]] 성향이 강한 이들도 있었다. 특히 [[기독교 민주주의]] 성향과 같이 산업화 이전의 공동체 윤리와 관습법을 이상적으로 여긴 이들은 기업가는 장원의 영주나 집안의 가장처럼 행동하며 노동자들을 보살펴야 한다고 여기며 노동자 복지를 보수적인 관점에서 도입하였다. [[경제적 자유주의]]는 보수, 문화적 자유주의와 [[사회자유주의]]는 진보라는 세계대전 이후의 통념 하에서는 이상해 보일 수 있으나 자유주의 진영 내에서 사회자유주의 발달이 미진했고 보수주의 역시 [[자유보수주의]], 경제적 자유주의보다는 기민주의나 반동주의, [[왕정복고]] 등에 가까운 스펙트럼을 가졌던 19세기 당시에는 사회주의와 보수주의가 비록 사고관이 달라 서로 갈등할 지더라도 자유주의자들의 개인화와 친부르주아 스탠스에 맞서 공동체를 중시한다는 목표는 의외로 공유하는 경우도 많았다.]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복지제도와 사회보험제도들을 도입하고 규제를 시작하면서 최소한 사람이 생존할 수 있는 꼬락서니는 갖추기 시작했다. 이 상태로 계속 놔둔다면 건강이 나빠져서 조기사망은 물론이고 극단적 양극화로 인해 노동자들의 구매력이 없어져 생산물을 구매할 수요자층도 줄어 공멸할 것이기 때문이며, 심지어는 공멸 그 이상도 할 수 있다는 것이 러시아 혁명으로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표적으로 12세 이하의 아이는 몇 시간 이상 노동 금지 같은 규제를 시작했는데, 당시 시장경제 자유주의자들은 "아이들의 일할 권리와 자유를 빼앗지 말라!"는 논리로 이에 반대했다. [* 진지하게 분석하자면 일종의 [[문화 지체]]로 볼 수 있는데, 아동 및 청소년 보호 및 노동 금지를 당연시하는 도덕관 자체가 산업 혁명으로 이루어진 사회 변화의 영향이기 때문이다. 산업 혁명 이전 시대에는 앞 문단에 전술되었듯 아동 노동이 당연시되었고 그랬기에 사회 혼란 등의 폐혜를 직접 겪기 전까지는 특히 고통을 직접 겪기 힘든 엘리트층을 중심으로 기업 활동의 자유 영역으로 보는 관점도 강력했던 것이다. 물론 자신들의 이득을 위한 부르주아들의 입김 역시 있었고. 아이들이 행복한 유년기를 보낼 권리와 자유라는 개념 자체가 일종의 산업 혁명 시대 유산이다.][* 산업이 고도화 되고 아래 숙련공 문단에서도 나왔듯이 자본가 입장에서도 아이들에게 일을 시키느니 그들이 교육을 받게 해서 나중에 숙련공으로 고용하는게 더 효율이 좋아졌기 때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